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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비정전DaysOfBeingWild, 상처의 순환

by heardenk 2021. 4. 28.

 

<아비정전>은 <화양연화>, <중경삼림>등으로 유명한 홍콩의 거장 왕가위 감독의 초기작이다. 그의 커리어 초반, 과감한 연출과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영화로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오로지 네 주인공, 특히나 장국영을 따라가는 극에는 여느 오락이나 긴장감있는 요소가 없다. 오히려 장면들은 인물들의 행동과 사소한 표정변화, 나아가 감정을 치밀하게 비춰낸다. 지나치게 클로즈업한 얼굴들은 초반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어느새 관객이 인물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기에 이르게 된다.

 

극 중 삽입되는 '발없는 새'의 나레이션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아비(장국영 역)는 친모와 양모 모두에게 버림받고 그 상처로 이루어진 몸으로 여자들을 거쳐간다. 여느 배우자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상적인 가정을 보고 자라지 못한 아비는 자신이 배워왔던대로 사람들을 대한다. 뻔하고 짧은 사랑들이 계속되는 동안 특별한 누군가가 특별한 순간으로 찾아온다해도 행복에 익숙지 않은 아비는 그로부터 도망가기에 이른다. 결국 아비는 자신이 최초로 버림받은 친모에게 찾아가게 되는데 이는 아비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행해야만 하는 궁극적인 삶의 목표였을 것이다. 때문에 삶의 목표를 부정당한 아비는 죽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태어남을 축복받지 못한 아비는 죽음 또한 추모받지 못한채 생을 떠난다. 아비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삐뚤어진 반항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철저하게 되돌려주는 기계적인 삶을 착실히 살아온 일꾼이다. 

 

그런 아비에게 유독 애틋한 사랑을 느끼는 두 여자는 어쩌면 아이에게 느끼는 측은지심을 간접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마치 자신들이 어린 아비의 과거에 무슨 잘못을 저지른 듯 착각하며 그에게 용서받기 위한 구애를 절실히 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상이 틀린 구애는 보답받지 못한다. 아비는 처음부터 려진과 미미를 떠날 생각으로, 발 없는 새가 잠시 쉬어갈 곳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경관 또한 그런 상처를 미리 알아보는 인물이지만 그는 결코 상처를 담아두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착실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선원이 된다. 아비가 죽고난 후 그는 또다른 배를 제시간에 탔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네 인물이 모두 사랑에 실패한 채 영화가 끝난다는 것이다. 그 중 아비의 배신이나 상처, 시련이 가장 컸고 때문에 영화는 그의 자취로 이루어진다. 

 

다시금 이 주제는 엔딩부에 양조위가 나오면서 후속에 상세히 풀어놀 것을 암시하지만 아쉽게도 속편은 나오지 못했다. 사실상 인생의 무위나 부조리함, 실존주의를 논하는 영화나 문학의 분위기를 띄는 것이 이 영화의 한 부분인데, 오히려 영화는 철저히 상처가 어떻게든 순환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섬세한 논리로 이루어져있다.

 

두 발이 타의에 의해 잘리게 된 새는 타의에 의해 날게 되었고, 결국 타의에 의해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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